<송맹동야서>와 부족함의 미학

저런생각 이런생각

2016-10-22 23:30:00


 

   중국의 중세에 맹동야(孟東野, 751-814)란 시인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비교적 어렵게 살았죠. 과거에도 응시하는 족족 낙방하다가 46살이 되어서야 합격했습니다. 8세기의 46살은 지금과 사뭇 의미가 달랐습니다. 노경에 접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나이였습니다. 51살 되던 해인 801년에는 남들이 모두 꺼려하는 남방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주변 사람들 모두 불운에 애석해 했습니다.

   그때 맹동야의 친구였던 한유(韓愈, 768-824)<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란 유명한 글을 지어 그를 위로했습니다. '맹동야를 떠나 보내며' 정도의 제목이 되겠습니다. 이 글은 역대 최고의 문장 가운데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작품입니다.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무릇 만물은 그 편안함을 잃게 되면 소리를 낸다. 풀과 나무는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뒤흔들어 소리를 내게 한다. 물도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휘저어 소리를 내게 한다. 또 물이 튀는 것은 무언가 내리쳤기 때문이요, 급하게 내닫는 것은 무언가 막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요, 끓어오르는 것은 무언가 뜨겁게 달구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쩔 수 없기에 말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노래하는 것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요, 우는 것은 설움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입 바깥으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이처럼 모두 편안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유에 의하면 시와 문장 등의 문학 작품이란, 문인이 세상을 향해 토로하고 싶은 속내라는 것이죠. 마음 속 하고 싶은 말이 정제되어 문학 작품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음 속의 불편함, 즉 불우함이 있어야 문학 작품을 창작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맹동야에게 하늘이 불우함을 내렸지만, 그것은 장차 그로 하여금 훌륭한 문학 작품을 만들게 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대단히 문학적인 필치로 말하고 있지만, 어떠한 환경에서 좋은 문학 작품이 창작되는지 잘 표현하고 있다 생각됩니다. 안락함과 풍요로움 속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죠. 마음 속에 절절한 정서가 있어야 좋은 시나 문장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한유의 표현을 빌자면 문학이든 예술이든, 모두 작가가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 말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역시 다른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 만큼 절실한 마음 속 아쉬움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불우한 시절 아름답기 그지없는 작품을 발표하다가, 부와 안락을 얻고 난 다음에는 창작의 동기를 잃어버리는 문학가, 예술가를 수 없이 보았습니다. 예술과 풍요로움은 병립이 어려운 것인가 봅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즉 세상을 향해 무언가 드러내 표현하기 위해서는, 조금 아쉬운 것, 부족한 것이 있어야 되는 모양입니다.

   생각해 보면 비단 문학가나 예술가에 그치지 않고 우리네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절실한 부족함 내지 간절한 욕구가 있어야만 성실해지죠. 절박한 필요가 생길 때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필요가 충족된 다음에는 대부분 안일해지고 나태해 집니다. 또 누군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까지는 그에게 지극히 순종적이고 겸손한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필요한 것을 다 얻어내게 되면, 그 사람을 홀시하고 푸대접하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원하는 것이 있든 없든, 필요한 일을 얻어내기 전이든 후든, 한결 같은 마음씨를 보이지 못하는 것일까요? 참으로 세상사는, 아니 인간은 경박하기 짝이 없군요. 그래서 살아가는 일은 헛헛하고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세상사가 이렇게 슬픈 것이기에 사랑의 가치가 더 고귀한 것이겠죠. 사랑은 나보다 상대방을 앞세우는 것이니까요. 평상시 나는 얄팍한 명리에 한없이 흔들리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아내가, 아이들이 그러한 대상이죠. 그리고 우리 부모님에게 내가 그러한 사랑을 받았던 것이고요.

   사랑의 범위를 조금 넓혀서 친구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진정한 친구라면 이해 관계에 따라 우정이 흔들려서는 안 되겠죠. 세속적인 외피에 따라 다가섰다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하여 심드렁해 져서도 안 될 것입니다. 나한테는 그런 진정한 친구가 있는 것인가 돌아보게 됩니다. 현재 나와 가장 가깝다 여겨지는 친구, 그와 나는 어떠한 교분을 나누는 사이일까요?

 

 

 

 

 


 

+ Recent posts

@charset "utf-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