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카와 다쿠보쿠(1886∼1912)는 요절한 천재 시인입니다. 아마 현재 일본에서 뭇 시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의 하나일 거라 생각됩니다. 선친의 서재에도 5권 짜리 개조사(改造社) 판 <이시카와 다쿠보쿠 전집(石川啄木全集)>이 있었습니다. 개조사는 일본에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을 처음으로 간행하기도 했던, 다분히 급진적 성향의 출판사였습니다. 주로 사회주의 관련 서적, 좌익 지식인들의 저작을 출간하여, 근대 일본 지성사 내지 사회주의 운동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개조사에서 <이시카와 다쿠보쿠 전집>을 간행했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평생 대단히 불우하고 가난하게 살았을 뿐더러, 그 자신 사회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절한 시인이라 하면 랭보(1854∼1891)나 김소월(1902~1934)을 떠올립니다. 랭보는 38살, 김소월은 33살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불과 27살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들보다도 훨씬 짧은 생애를 살았군요. 실로 섬광과 같이 세상을 살다 간 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20살 되던 해인 1905년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여인과 결혼합니다.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태어난 지 불과 24일만에 죽었습니다. 나머지 두 딸도 각각 25살과 20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은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그의 일가가 이렇게 불행했던 것은 빈곤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잠깐 소학교의 교사로 근무하였지만 학생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곧 파면되었습니다. 이후 일가에 아무 소득도 없게 되자, 그의 가족은 궁핍과 영양실조로 말미암아 차례차례 폐결핵에 걸렸습니다. 그도, 아내도, 모친도, 그리고 딸까지 모두 폐결핵을 앓았습니다. 그리고 변변히 치료도 하지 못한 채 병을 키우다가 차례차례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인 1912년 모친도 폐결핵으로 작고하였습니다. 이듬해에는 아내 역시 폐결핵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두 딸 가운데 장녀는 급성 폐렴으로, 차녀는 폐결핵으로 죽었습니다.
이러한 빈곤과 불행 때문에 그는 한때 자살하러 바닷가로 간 적도 있습니다. 이때 평화롭게 노는 모래사장의 게들을 보고, “동해 바다 작은 섬, 갯바위의 흰 백사장, 나 눈물에 젖어, 게와 놀았다네.”란 시를 남기고 있습니다. 자살하러 갔다가 바닷가 게들의 모습을 보고 그냥 돌아섰던 것이죠.
이처럼 그의 생애는 불우하기 짝이 없었지만, 오늘날 그는 일본인들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 있는 지역 여기저기에 동상과 시비가 세워져 있고, 거의 모든 일본인들이 그의 시 하나 둘쯤은 외우고 있습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의 하나가 아래의 작품입니다.
たはむれに 母(はは)を背負(せお)ひて 장난삼아 어머니를 업었다가
そのあまり 軽(かろ)きに泣(な)きて 너무도 가벼우신 것에 눈물이 나
三歩(さんぼ)あゆまず 세 걸음도 떼지 못하였네.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시입니다. 날 위해서라면 평생 아무 것도 아끼지 않고 다 주시던 어머니..... 평생 고생만 하느라 수척해져 버리신 어머니.....
오는 3월 말이면 선자(先慈, 돌아가신 모친)께서 돌아가신 지 14년이 됩니다. 선친이 작고하시고 3개월 후 홀연히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모두 자식을 위해 어떠한 고초도 마다하지 않으시죠. 저의 어머니 역시 자식을 위해 온갖 고생을 기꺼이 감내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자식이 세상의 모두였습니다. 자식이 좋아하는 노래를 좋아하시고,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시고, 자식의 공부와 장래를 위해 모든 것을 참고 이겨 나가셨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언제나 감기는 다 독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환절기마다 어머니가 얘기해 주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번 감기가 독하다더라, 감기 조심하거라.”
감기가 늘 독할 수가 있을까요? 감기는 충치 만큼이나 흔한 병이죠. 행여 자식이 감기에 걸려 고생할까 봐 몸조심하라는 뜻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선자께서 돌아가신 후 한동안 시골의 집으로 전화를 걸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전화를 걸면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인자한 음성으로 제 이름을 불러 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오랫 동안 가슴 아팠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다 위대합니다. 하지만 제 어머니는 그 어느 어머니보다 훌륭하고 자애로웠습니다.
세상에 단 한 분뿐이었던 어머니, 세상의 그 누구보다 저를 사랑해 주셨던 어머니.... 어머니가 몹시 보고픕니다. 그리고 그 따뜻한 사랑이 그립습니다.
어머니, 저를 낳아 주고 길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보다 더, 제게 행복한 어린 시절을 선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살아 생전 한 번도 말해 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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