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결혼 이듬해) 1월 1일 안암동의 대광아파트 안방에서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모두 결혼식을 앞두고 장만한 것들입니다.
아내의 옷은 그때 마춘 한복이고, 제가 입고 있는 것도 역시 아내가 사준 것이랍니다.

결혼 후 첫번째로 살던 안암동의 대광아파트 옥상에서(1989년 10월 2일)
멀리 북한산의 향로봉과 문수봉이 보입니다.

안암동의 대광아파트 옥상에서(1989년 10월 2일)
대광아파트는 우리가 거주할 때 이미 세워진 지 20년 쯤 된 낡은 아파트였습니다.
아파트 벽은 노후되어 부스러지기 시작했고 배관은 낡아서 수돗물에서 녹물이 흘러나왔었죠...
결혼하여 처음 그곳에 살며 우리는 주변의 경동시장과 보문동, 성신여대 앞 등지로
부단히 돌아다녔습니다.
당시 아내는 제기동의 성일중학교에 근무하였습니다.
안암동에 집을 구한 것도 아내의 직장 때문이었습니다.

효진이의 생후 5개월 때 모습
효진이는 두번 째 살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1990년 4월 1일 생이랍니다.
생일이 4월 1일(만우절)이라서, 친구들에게 오늘이 자기 생일이라 하면
장난이라고 놀린다는 얘기를 들었다네요.

신문 보는 내 등 위로 올라탄 효진이(신길동, 93년 2월)
신길동(신길교회 앞)은 우리가 세 번 째로 살았던 집입니다.
첫 번 째는 안암동의 대광아파트(89년, 1년),
두 번 째는 영등포 역 뒷편의 영등포 1가 동(90년, 1년 반),
그리고 세 번째는 91년 여름부터 4년 반 동안 살았던 신길동(96년 2월까지)에서 살았습니다.
이 무렵 우리는 아내의 근무지를 따라 이사를 다녔습니다.
90년 봄 아내는 고등학교로 근무지 변경신청(내신)을 했고
이에 따라 아내의 근무지는 성일중학교에서 영등포여자고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도 자연스레 아내의 근무지 인근인 영등포로 이사했습니다.
두 번 째 집인 영등포에서 효진이가 태어났습니다.
위 사진을 찍을 때 효진이는 4살이었겠군요.
당시 효진이는 제가 앉아 있을라치면 등 위로 타고 오르며,
'아빠는 나무이고 나는 영승이(원숭이)'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롯데월드에서 기린 장난감에 올라 타 신난 모습을 짓는 효진이(93년 7월)
이 무렵 저는 효진이를 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신길 시장에도, 지금은 없어진 신길 시장 근처의 태양 동산이란 곳에도,
그리고 롯데월드나 서울랜드 등지에도 뻔질나게 다녔습니다.
놀이동산에 데리고 가면 입구에서부터 신나서 달음박질쳐 들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이 사진에서도 저는 효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짓고 있군요.

남산 공원에서의 효진이(93년 5월)
아내가 효진이를 데리고 남산 공원에 놀러갔을 때의 모습입니다.
효진이는 목에 신길유치원의 가방을 메고 있네요.

반포 어린이집의 학예회(96년 12월)
우리는 96년 3월 반포동의 주공 2단지로 이사했습니다.
이 해 봄에 아내가 영등포여고에서 반포고로 전근을 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때까지도 백수의 상태였습니다.
결혼할 당시(89년 4월) 저는 석사 학위도 취득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듬 해인 90년 2월에야 석사 과정을 마치고 이어 3월에 박사 과정에 진입했습니다.
제가 외국어대 교수로 취직하는 것은 결혼 8년만인 1997년 3월입니다.
그 이전까지 아내는 사실상 제 학부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저처럼 공부한답시고 아내에 기대 사는 한심한 사람들을
'등처가(마누라 등쳐 먹는 자)'라 불렀답니다.
저는 아내랑 결혼하며 처음으로 사회적 신분을 얻었다 생각했습니다.
'교사의 남편'이란 지위가 그것이죠....
1993년엔가 어느 급진적인 여성운동가가 갑작스레 입장을 바꾸어 얘깃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여성)은 여성들에게 가정을 함부로 버리지 말하고 말하며,
'가정은 한국적 현실에서 여성에게 사회적 경제적 성적 만족을 제공하는 일종의 사적 사회 보장 기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을 보며, '이 말은 성만 바뀌었지 딱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로구나.'하고 생각했답니다.

효진이와 나릴래(97년 10월, 반포 주공 2단지의 거실)
1997년 3월 효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의 교수로 취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6월 나릴래가 태어났습니다.
'나릴래' 란 이름은 제가 지은 것입니다.
'나리일래'란 말을 줄인 것이죠.
'나리꽃이 될래'란 의미입니다.

주공 2단지에 살 때의 효진이와 나릴래(97년 11월)

반포 주공 2단지 212동 앞의 잠원 유치원에서(1998년 10월)
반포 주공 2단지에서는 6년 간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212동의 1층(2년)에서, 다음에는 225동의 2층에서(4년)에서 살았죠.
주공 2단지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단지의 구성도 18평과 25평으로 되어 있었죠.
우리가 살던 당시 건축된 지 20년을 넘겨서 나무도 제법 큰 키로 자란 상태였습니다.
봄이면 여기저기에 꽃들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빨갛게 단풍이 드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나릴래는 참 귀엽고 이뻤습니다.
어디를 데리고 가든 다들 예쁘다고 성화를 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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