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목의 <증별>과 난세를 사는 지식인

저런생각 이런생각

2016-10-23 13:00:30


 

 

   두목(杜牧, 803853)이 지은 <증별>이란 아름다운 한시가 있습니다. 두목은 당의 말기, 그러니까 당시(唐詩)의 시대 구분을 빌자면 만당(晩唐)을 수놓은 대시인이었습니다. 두씨(杜氏) 성을 가진 시인이라 하면, 우리는 당시를 대표하는 두보(杜甫)를 떠올리게 됩니다. 두목은 두보와 더불어 이두(二杜)라 병칭됩니다. 두보를 대두(大杜)라 함에 반하여 두목은 소두(小杜)라 칭해집니다. 두보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와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한 시인이었던 셈이죠. <증별>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贈別(증별)                                이별의 노래

 

   多情卻似總無情(다정각사총무정)      다정하면 오히려 무정하게 비치는 것일까?

   唯覺罇前笑不成(유각준전소불성)      술 두루미 앞에 두고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도다.

   蠟燭有心還惜別(랍촉유심환석별)      하지만 촛불에 정이 있어 이별을 슬퍼해 주나니,

   替人垂淚到天明(체인수루도천명)      날 대신해 날이 새도록 눈물을 흘리는구나.

 

  이 시는 두목이 33살 되던 해인 835년, 어느 여인과 헤어지며 지은 이별시입니다. 증별(贈別)이란, 상대방에게 마음을 담은 증표를 주며 헤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몌별(袂別)이란 말이 서로 소맷부리를 붙잡고 아쉽게 작별하는 것을 가리키죠? 전별(餞別)은 이별이 아쉬워 잔치를 베풀어 주는 것을 가리키고요. 한때 전별금(餞別金)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군요. 전별금이란 우리 모두 알고 있듯, 헤어질 때 돈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애초는 이별이 아쉬워 노자 형식으로 약간의 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권력자가 떠날 때 혹시라도 후일 그 사람과 엮일 것을 대비하여 미리 왕창 돈을 주는 것으로 변했죠. 증별은 몌별이나 전별 등과 같이, 이별의 한 형식 내지 모습을 가리킵니다. 두목은 시인이기 때문에 이 시를 이별의 증표로 선사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다정다감하면 오히려 매정한 듯 되어 버리는 것일까요? 시인은 이별을 앞에 두고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술상 앞에서 웃음을 짓지 못합니다. 그는 이별을 슬퍼하는 여인에게 웃어주며 달래고 싶었습니다.

  “내 지금 완전히 가 버리는 것 아니잖아요. 어쩔 수 없이 떠나가지만 금새 돌아올께요.”

  하지만 여인을 달래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또 너무 마음이 간절하여 짐짓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인은 마음이 여려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안타까움과 슬픔을 술상 곁의 초가 대신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날이 지새도록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죠.

  이 이별의 장면이 너무도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이별이 아쉬워 말없이 서로 바라보기만 하는 두 사람, 그리고 그 슬픔을 대신 표현해 주는 듯, 하염없이 녹아내리는 촛불.... 너무 이별이 슬퍼서 서로를 달래주지도 못한 채 수심 가득 찬 얼굴로 가만히 앉아만 있었을 두 사람이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합니다.

 

  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그 이별을 이렇게 멋진 시로 표현하다니 더욱 감동스럽군요. 이런 이별이라면 필시 두 사람의 관계도 서로 사랑이 지극하고 금슬 좋은 부부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 시에 나타난 이별 장면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두 남녀는 술상을 앞에 두고 이별을 하고 있습니다. 같이 하룻밤을 지내면서 말이죠. 무언가 이상합니다. 부부라면 술잔을 기울이며 이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의문은 위에 든 시의 앞에 있는 작품을 보면 금새 풀립니다. 사실 <증별>은 두 수로 되어 있는 연작시입니다. 위의 싯귀는 그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시는 아래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娉娉嫋嫋十三餘(빙빙뇨뇨십삼여)      아리땁고 귀여운 열세 살 남짓의 그대,

   豆蔲梢頭二月初(두구초두이월초)      봄 날에 피어난 두구꽃 봉오리 같구나.

   春風十里揚州路(춘풍십리양주로)      양저우 거리의 홍등가는 10리나 뻗어 있지만,

   卷上珠簾總不如(권상주렴총불여)      주렴 올리고 아무리 찾아도 그대 만한 미인은 없으리.

 

 

  그렇습니다. 33살의 두목은 13살 짜리 술집 아가씨와 이별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양저우는 중국 제일의 도시였습니다. 이 무렵 중국에는 ‘양일익이(揚一益二)’란 말이 있었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양저우가 첫 번째이고, 그 다음이 익주(益州), 즉 오늘날의 청두(成都)란 뜻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양저우에는 유흥가가 흥청망청 번창하고 있었습니다. 두목은 이곳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급기야 열세살 짜리 앳된 아가씨와 정분이 났던 것이죠.

 

  이런 사정을 알고 나니 이 시를 읽으며 느꼈던 애틋한 느낌이 싹 가시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영 뒷맛이 개운하지 않네요. 하지만 짐짓 이 시가 태동된 배경에 눈을 감으면, 역시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명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도 이 시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마음에 담긴 속내를 잘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이 꼭 우리네 한국 사람과 닮은 듯하다 여겨지기도 하니까요.

  학창 시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시조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조금 풀어서 쓰면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배꽃에 달빛이 어리는 한 밤중,

   배나무 가지에 서린 봄날의 정감을 두견새야 어찌 알리요마는,

   다정다감한 것도 병인 듯 잠을 이루지 못하네.

 

 

  고려시대의 인물인 이조년이란 사람이 지은 시조이죠. 이 시조의 마지막, 즉 ‘다정도 병인 양하여’란 구절도 바로 두목의 시에서 따온 것이라 여겨집니다.

 

  두목이 살았던 9세기는 극심한 혼란기였습니다. 한때 찬란하게 위세를 떨치던 당, 즉 대당제국이 볼품없이 쇠퇴해 가고 있었습니다. 조정에는 환관이 날뛰고, 지방에는 절도사라는 무인 세력이 발호하는 상태였습니다. 정치의 질서가 무너지자, 이민족의 침공도 빗발치고 안으로는 농민의 반란도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대당제국에 황혼이 드리워지는 쓸쓸한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사는 지식인은 어떠한 모습을 보여야 할까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한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러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조정에서 무도한 환관 세력과 맞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환관이 휘어잡고 있는 조정에 기대할 수 없다 생각하여 농민 반란에 가담하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또 어지러운 시대에 절망하여 강호에 묻혀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혼탁한 세상 앞에서 자신의 무능을 한탄하며 저작에만 몰두하기도 했죠.

  하지만 두목은 그처럼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술과 여색에 휩싸여 흐느적거리며 환락을 쫓았을 뿐입니다. 난세라 해도 경제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시 규모가 커지고, 도시 내 상공업이 발달하고, 이에 따라 유흥가도 번성했습니다. 두목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유흥으로 지새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 스스로도 ‘10년 동안 청루(靑樓)를 누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도 못마땅한 세태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이라 할 수 있나요? 그건 결코 아니라 생각되는군요.

  물론 지식인이라 하여 꼭 세상을 걱정하며 고심참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죠. 또 사람이 누구나 고결한 모습을 보일 수 없습니다. 모두 투사가 될 수도 없습니다. 지식인도 사람이고 따라서 오욕(五欲)과 칠정(七情)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난세라 해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갈망의 추구까지 그만두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목의 방종은 도저히 그러한 차원이라 용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회가 온통 부조리와 몰상식으로 뒤덮인 상태에서, 그것에 대해 눈감아 버린 채 방탕과 쾌락에 탐닉해 갔습니다. 두목의 시가 아무리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아름답다 하여도, 그가 보여준 고민 없이 살아간 모습, 무절제한 생활은 비난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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