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만의 지리산 종주기
일시 : 2006년 6월 3일(토) 02:50~15:00
종주 형태 : 단독(이근명, 만45세)
서울-지리산 교통편 : 산악회 제공 관광버스
종주 방향 :
중산리 - 천왕봉 - 벽소령 - 노고단 - 성삼재(총 12시간 10분 소요)
노정 :
02:50 중산리 매표소 출발
05:10 천왕봉 도착(출발 이래 2시간 20분 소요)
05:20 천왕봉 출발
06:00 장터목산장 도착(출발 이래 3시간 10분 소요)
07:10 세석산장 도착(출발 이래 4시간 20분 소요)
07:25 영신봉 도착
07:50 칠선봉 도착(출발 이래 5시간 소요)
08:25 선비샘 도착
09:10 벽소령산장 도착(출발 이래 6시간 20분 소요)
09:25 벽소령산장 출발
10:35 연하천산장 출발(출발 이래 7시간 45분 소요)
12:00 토끼봉 도착(출발 이래 9시간 10분 소요)
12:20 화개재(뱀사골산장 갈림길) 도착
12:55 삼도봉 도착(출발 이래 10시간 5분 소요)
13:30 임걸령 도착(출발 이래 10시간 40분 소요)
14:30 노고단 도착(출발 이래 11시간 40분 소요)
15:00 성삼재 도착(출발 이래 12시간 10분 소요)
1. 지리산으로의 출발
6월 2일(금) 밤 9시 10분 부랴부랴 배낭을 꾸려 전철역으로 향했다. 6시경 귀가하여 심드렁히 있다가, ‘등산이라 가볼까?’ 라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하여 전격적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요 며칠 시답지 않은 일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 언행 때문에 기분 상해 있던 상태였다. 학기말인데다가 연구비의 결과보고가 목전에 닥쳐 있어 좀 바쁜 시기이지만, 이런 기분으로 주말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힘들다 판단하여, ‘그럴 바엔 산을 찾아가 심신이나 수양하자’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어디를 갈까? 철쭉 구경을 가면 좋겠지만, 소백산이나 태백산, 두위봉 등지의 철쭉은 만개하기까지 한 주일 정도의 시간이 더 있어야 한다. 인터넷을 뒤지니 방태산의 야생화 탐방, 설악산의 공룡능선 등 이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일정이 눈에 띄었다. 이 중에 하나를 골라 따라나설까? 약간 흥분되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인터넷을 조금 더 돌아다니니 ‘금요 무박(지리산종주)’란 상품이 있었다. ‘아니 지리산을 하루만에 종주한단 말이야?’ 즉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오늘 저녁에 지리산에 가나요?”
“예, 맞아요”
“하루만에 종주를 마친단 말이죠?”
“예, 그렇다니까요.”
좋다, 그럼 여기를 따라나서자. 그런데 내가 지금 감기에 걸려있는데도 괜찮을까? 그렇지만 내 두 다리는 유능하니까. 아무리 감기에 걸렸다 하기로소니 남들 다 하는 것을 못 따라 할까?
2. 천왕봉의 일출을 보기까지(05시 20분까지)
산악회의 관광버스는 9시 40분 말죽거리의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출발했다. 무려 90명이 두 대의 버스를 타고 간단다. 우리 한국 사람들 참 대단하구나. 하룻 동안에 지리산을 종주하겠다는데도 이렇게 메뚜기 떼 같이 사람들이 몰려드니.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니 거의 대부분 50대의 아저씨들 뿐이었다. 간간이 70 줄에 가까워 보이는 사람까지 있었다. 나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관광버스는 경부고속도로의 죽암 휴게소에 10분간 정차한 후 이튿날인 6월 3일 새벽 두시 20분 경 산청휴게소에 정차했다. 그 사이 난 얼마나 눈을 붙였을까? 기껏해야 두 시간 남짓 정도 되겠지. 버스에서 내리기 전 등반대장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식사하시고 30분 후에 출발합니다.”
배낭을 급히 꾸렸으니 아침밥을 제대로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굴밥을 시켰다. 6000원 짜리였는데 생각보다는 부실했다. 굴도 싱싱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걸 먹고 지리산에 들어섰다가 탈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밥 먹고 양치질한 다음 버스에 오르니, 등산대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이번 종주 산행은 대략 14 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주력이 좋은 분들은 간혹 9 시간에 주파하기도 합니다.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도 보통은 세 시간 반 정도가 필요하다지만, 어떤 분들은 한 시간 반만에 오르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분들이 앞에 있다 해서 무작정 따라하려 들지는 마세요. 그러다 무릎을 망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종주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니 너무 뒤처지는 분들은 벽소령에서 차단하고 음정리로 내려가게 하겠습니다. 기준 시각은 오전 10시 반입니다. 그때까지는 벽소령을 통과하셔야 종주가 가능합니다.”
오전 2시 40분 관광버스는 중산리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작년 겨울(05년 1월)에 왔을 때 성삼재 매표소에서는 오전 5시 이전까지 철저히 문을 닫아 걸었다가 그 이후에야 입산시켰었다. 오늘도 5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런데 등산대장의 말이 이곳은 좀 일찍 문을 연단다. 늦어도 3시에는 등산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천왕봉의 일출을 보려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가 보다. 천왕봉에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중산리매표소이다. 약간 서성이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웅성웅성해졌고 이윽고 입산해도 좋다는 관리소의 허가가 내려졌다. 정확히 오전 2시 50분이었다. 사방은 캄캄한 어둠 속이었다.
등산 대열은 척척 천왕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장거리 산행을 할 때는 처음 얼마 동안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가야 한다. 처음 몸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되면 이후 곱절로 힘들게 된다. 그것은 마치 투수가 본격 투구하기 전 서서히 몸을 풀어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가능한 한 천천히 간다는 생각을 하고 걷는데, 그렇다 해도 대열의 행진속도가 너무 느리다. 약간 속도를 높이고 걷다 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나 혼자 있는 게 아닌가? 앞뒤로 다른 사람들 랜턴의 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가노라니 약간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 좀 더 속도를 올려 내쳐 걸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걸었을까? 위로 불빛이 보이고 독경소리가 들렸다. 아 법계사로구나. 해발 1400미터에 있다는, 그래서 남한의 사찰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라고 한다. 여전히 주변은 어두웠다. 법계사에 들러 한 번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으나 포기하고 우회를 시작했다. 얼마 후 시야가 탁 트였다. 멀리 산청 쪽이 어둠 속이지만 한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기분이 상쾌해졌다고 느낀 직후부터 등산로는 갑자기 경사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곳까지는 계속 남을 추월해 왔지만 서서히 발걸음이 늦어져서 다섯 사람인가를 앞서 보냈다. 등산로의 경사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난 감기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가고 있는데, 날 앞질러 가는 사람이 말한다.
“좀 서둘러야 천왕봉의 일출을 보겠어요.”
아참 그렇지, 이번 기회에 천왕봉 일출을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호사가들은, ‘3대를 적덕해야 천왕봉 일출을 본다’고 입방아를 찧는다. 천왕봉 일출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고산지대이다 보니 일기의 변화가 심하고 또 구름이 잘 끼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날씨는 화창하니 필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나는 다시 마음을 휘어잡고 정상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경사는 더욱 심해졌고 절망감은 더해졌다. 열 발자국 떼고 한 번 숨 돌리고, 다시 열 발자국 떼고 숨 한 번 돌리기를 거듭했다. 그 사이 주변은 환해지기 시작했다. 아, 이번에도 천왕봉에서 일출 보는 것은 틀렸구나. 체념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차오르는 숨을 돌려가며 힘든 발걸음을 떼어 천왕봉에 올랐다. 그런데 천행인지 아직 일출은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 기진맥진한 몸을 한 귀퉁이의 바위 위에 올렸다. 바람이 거세고 추위가 느껴졌다. 그래서 배낭 속에서 긴팔 옷과 잠바를 꺼내 입으려는 순간, 외침이 들려왔다.
“일출이다!”
눈을 돌리니 멀리 구름 위로 해가 비치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둥그렇게 솟아올랐다. 오전 5시 13분, 그렇게 천왕봉의 일출을 보았다.

천왕봉의 일출(사진 속의 시각은 20분이 빠릅니다.)

천왕봉 정상표시석 앞에서
3. 천왕봉으로부터 벽소령 산장까지(09시 25분까지, 약 4시간 소요)
일출을 보며 약간의 숨을 돌린 다음 등산 시작 이후 처음으로 물을 마셨다. 또 초콜렛(자유시간) 두 개를 먹었다. 이렇게 10여분 천왕봉에 머물다 장터목 산장으로 향하니 한결 몸이 가뿐해진 느낌이었다. 천왕봉으로부터 제석봉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는 철쭉이 만발해 있었다. 그 분포의 집중도는 철쭉으로 이름난 곳들에 못 미치지만, 연분홍의 파스텔 색깔은 참으로 청초했다. 또 제석봉의 고사목 지대는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무언가 내성을 촉구하는 느낌이 든다. 1800미터의 고지에서 풍우한설을 맞으며 서있는 고사목들. 그 대부분 살아 1000년, 죽어 1000년을 버틴다는 주목이라 한다. 더욱이 이렇게 주목들이 죽은 것이 사람 탓이라니! 도벌꾼들이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질러 그렇게 된 것이란다.

제석봉의 고사목들
장터목산장에 도착한 것은 오전 6시. 장터목 산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8월의 휴가 시즌에는 정말 장터라도 벌어진 듯한 분위기이다. 노고단 쪽에서 종주를 시작한 사람들이 대부분 산속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곳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지리산을 종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여기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이튿날 천황봉의 일출로 대미를 장식하고 싶어 한다. 오늘 역시 일출을 보고 내려온 사람들로 장터목 산장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구례에선가 왔다는 중학생 일단이 장터목 산장 앞마당을 장악하고 한창 선생님들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었다.
“너희들은 한 사람씩이지만 네게는 너희들이 수십 명이란 말야!”
아휴 그 지겨운 소리. 나 역시 선생이지만, 선생님들은 그 똑 같은 소리들밖에는 할 줄을 모르나? 귀 뒤켠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에 웃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장터목 산장 앞마당의 학생과 교사
장터목 산장을 뒤로 하고 연하봉을 오르려니 다시 숨이 차왔다. 하지만 장터목 산장과 세석 산장 사이는 연하봉, 삼신봉, 촛대봉과 같은 몇 번의 힘든 오르막길이 있으나 매우 정겨운 구간이다. 길을 걷노라면 마치 흘러간 어린 날의 시골 뒷산을 연상시키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고, 또 힘든 고갯마루에 올라선 순간 장쾌하게 시야가 트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른바 지리십경(智異十景) 하나로 연하선경(煙霞仙景)을 드는 것이려니.


세석산장의 원경

세석평전의 철쭉
촛대봉으로부터 지리한 돌 계단길을 내려서자 멀리 세석산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리산내 10개에 가까운 산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깨끗한 곳이다. 2003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아들 녀석과 함께 1박 2일 여정으로 종주를 할 때 묵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그 놈은 아빠한테 농담도 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불과 3년이 지난 지금은 아예 아빠하고는 말조차 하려 들지 않는다. 기숙사에 살다가 일주일만에 한 번씩 집에 들르면서도 온갖 짜증만 부리며 엄마를 종처럼 부리려 든다. 엄마는 아들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난 그런 아내와 아들이 못마땅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못 본 척한다. 언제 다시 예전처럼 살가운 아들로 돌아올 날이 있을지?
2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철쭉 명소는 세석평전이었다. 매년 5월말이 되면 세석평전은 연분홍 철쭉으로 뒤덮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곤 했다. 이후 바래봉이라든가 제암산과 같은 곳이 알려지면서 세석평전의 명성은 약간 퇴색하였지만, 그래도 중년 이상이라면 여러 형태의 사진으로 접했던 그 세석평전의 철쭉을 아직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인가? 세석평전에는 그 옛날 화사했던 철쭉이 초라한 자취만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물으니 올해의 철쭉은 지금이 절정의 상태란다. 하지만 철쭉은 듬성등성 피어 있고 결코 군락지라 일컬을 정도가 아니었다.
세석평전을 지나칠 즈음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10분경이었다.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서울의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출근하는 아내가 혹시라도 늦잠을 잘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깨어 있었다.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보고 세석평전을 지나고 있다니 몹시 놀란다.
89년도에 결혼했으니 올해로 만 17년이 지났다. 결혼하기 전 서너 명의 여자들과 사귄 적이 있지만, 아내는 그때 만나보았던 어느 여자보다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약간의 약점은 있지만, 그 약점들에 비하면 장점이 너무도 돋보인다. 무엇보다 남편에 대한 배려가 고마울 정도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시부모에 대해서도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효성을 보였다. 더욱이 내가 대학원 석사 과정에 다닐 때 만나 결혼한 이래, 박사과정에 들어가 학위를 받고 대학에 자리잡기까지 근 10여넌간을 뒷바라지했다. 나에게 참으로 분에 넘치게 고마운 여자이다.
세석평전을 지나 영신봉을 오른 다음에는 제법 가파른 나무계단을 장시간 내려가야 한다. 일반적인 종주, 그러니까 노고단으로부터 천왕봉으로 향할 때 가장 힘들었던 구간으로서 통상 삼도봉과, 토끼봉, 명선봉, 그리고 영신봉 등을 꼽는다. 특히 삼도봉의 가파른 길을 힘들여 오른 다음, 하염없이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토끼봉을 오를라치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명선봉은 그런 연후에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해야 하니 더욱 힘에 부친다. 뿐만 아니라 노고단으로부터 토끼봉, 명선봉에 다다를 즈음이면 적어도 종주가 시작되고 대여섯 시간이 경과된 시점이라 누구를 막론하고 지쳐 있을 때이다. 영신봉을 두고 힘들다 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이다. 영신봉 자체 가파른 계단을 장시간 올라야 하는 탓도 있지만, 그 외에 세석산장 직전에 위치하고 있어 하루 일정의 막바지에 지나쳐야 하기 때문이다. 2박 3일의 여정으로 종주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연하천이나 벽소령에서 묵는 사람들에게도 영신봉은 이미 산 속에서 하루를 꼬박 걸은 후 다시 이튿날 오후 쯤 도달하는 지점이다. 힘들다 여길 수밖에 없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3년 아들과 함께 종주할 때도 힘든 나머지 영신봉에 오르는 나무계단에 주저앉아 허겁지겁 참치통조림을 뜯어 먹었던 적이 있다.
영신봉으로부터 벽소령에 이르는 길은 비교적 편안하다. 군데군데 조망점이 있어 시야가시원하게 트이는 것도 일품이려니와, 선비샘을 거쳐 벽소령까지 이르는 완만한 길에 들어서면 무언가 산에 오름으로 말미암아 심성이 도야된 듯한 환상에 빠져 든다. 산을 내려서면 남에게 한없이 관대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덕평봉 너머 벽소령에 이르는 길

벽소령 도로의 붉은 병꽃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길가의 야생화와 나무꽃들도 시야에 들어온다. 6월초의 지리산에는 갖가지 야생화와 나무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그중에서도 붉은 병꽃나무과 야광나무는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노랑과 분홍이 어우러진 병꽃나무, 노랑색 병꽃나무도 있었다. 벽소령 산장 주변에는 미나리아재비가 그 노란색의 기품 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여름에 피어날 동자꽃이나 오이풀, 모싯대, 물봉선은 한창 키를 키워가는 중이었다.
4. 벽소령에서 노고단까지(약 5시간 소요, 성삼재 오후 2시 30분 도착)
벽소령 산장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10분이었다. 중산리 매표소를 오전 2시 50분에 출발했으니 약 6시간 20분 걸려 도착한 셈이다. 벽소령(碧宵嶺)이라, 푸른 밤의 고개란 뜻이다. 참 낭만적인 이름이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가슴 아팠던 상처를 압축적으로 반영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름 아닌 20세기 중반 민족내의 이념분열로 말미암은 한국전쟁과 빨치산의 흔적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다. 노고단으로부터 천왕봉에 이르는 이른바 지리산 주능선 가운데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유일한 도로가 바로 이곳에 나있다. 웬일로 여기에 도로가 다 나있을까? 남원에서 구례에 이르는 도로, 그러니까 성삼재를 넘어가는 도로가 날 때도 환경파괴라 하여 어지러운 논쟁이 있었다. 그런데 하물며 지리산 줄기 한 복판에 위치한 벽소령에 어인 연유로 도로가 날 수 있었을까? 이곳에 도로를 낸 것은 한국전쟁 직후 지리산 일대에 근거를 둔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서였다. 1953년 9월에 빨치산, 그러니까 남부군의 총수 이현상이 살해된 곳도 벽소령 도로를 따라 북으로 내려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1950년대 초중반 지리산 일대에서 이념을 위해 젊음을 바쳤던 혁명전사들은 이제 거의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빨치산이란 이름으로 한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또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사람들. 하지만 그들 역시 우리 민족의 일부였다. 아니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고민한 젊은이들이었다. 20세기의 한국사는 너무 험난했고, 그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과 젊은이들은 한시 바삐 우리 민족을 강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19세기 후반으로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전세계는 공산주의라는 이념에 매료되었다. 그 공산주의가 제시하는 문제해결 방식은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했다. 지리산 빨치산이란, 20세기 초의 한국 지식인들 내지 젊은이들이 조국을 강하게 하고 개혁하기 위해 치열하게 모색한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오늘날, 공산주의의 실험은 일단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서구의 공산주의는 이러한 상황전개에 따라 새로운 노선 정립에 고민하고 있고,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공산 정권들도 앞 다투어 자본주의의 능률을 도입하려 한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것이 제시했던 대전제, 즉 약자에게는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남기고 있다. 공산주의의 도전이 있었기에 자본주의가 19세기 이래 노동자, 농민들의 고통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벽소령 산장
현재 벽소령 산장에서는 언제나 젊은이들의 평화로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주변에는 온갖 야생화가 만발해 있다. 50여년 전 빨치산들이 젊음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평화와 여유가 형태는 다르지만 만개해 있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등반대장은 벽소령을 오전 10시 30분까지는 통과해야만 한다고 말했었다. 나는 이곳에 9시 10분에 도착했으니 상당히 양호하게 주파한 셈이다. 하지만 또 듣자하니, 오늘 관광버스 두 대가 왔는데 서울을 향해 출발하는 시각이 다를 것이라 한다. 첫 차는 벽소령에서 낙오한 사람들, 그러니까 10시 30분 이후에 도착한 사람들을 하산시킨 다음, 여기에 성삼재에 도착하는 사람들을 선착순으로 더하여 45명이 되면 출발한다는 것이다. 낙오자가 얼마일지 모르지만 대략 30%라 잡으면 약 30명 쯤 될 것이다. 그러니 선착순 15등 안에는 들어야 일찍 서울로 돌아갈 수 있는 셈이다.
이런 계산으로 마음은 약간 급해졌지만, 벽소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벽소령 산장에는 빈손으로 와서도 충분히 식사를 할 만한 상품이 있었다. 난 햇반(3000원) 하나에 깻잎김치(2500원)를 샀다.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데워주었다. 소박한 식사를 마치고 약간 숨을 돌리니 9시 25분. 벽소령에 도착하고 15분이 경과한 셈이다. 이만 쉬고 다시 서쪽으로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벽소령을 나서자 바로 너덜지대(자갈 길)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연하천 산장에 이르기까지 1시간여, 비교적 순탄한 길이 계속된다. 군데군데 전망 좋은 곳도 적지 않다. 연하천 산장은 좀 불친절한 곳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측에서 개인에게 임대 운영하는 곳이라서 일체의 쓰레기를 버릴 수 없다. 심지어 라면을 끓여먹고 국물까지 다 마시게 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화장실은 왜 그렇게 냄새나는지. 여름날 연하천 산장에 접근하면 과장하여 200미터 전후에서부터 그 심한 냄새가 날 정도이다.

연하천 산장
연하천 산장을 지나친 시점이 오전 10시 35분. 이제 중산리로부터 산행을 시작한지 8시간이 다 되어간다. 전체 산행의 노정은 절반을 훨씬 지나쳤지만, 정작 힘든 구간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연하천 산장을 지나면 바로 맞이하는 곳이 명선봉이다. 노고단 쪽에서 올 때는 가파른 경사를 급하게 올라서야 하지만, 반대로 갈 때는 완만한 나무계단을 끝이 없다 느껴질 정도로 밟으며 오르게 된다. 그렇게 명선봉을 올랐다 내려와서는 다시 가파른 토끼봉을 향해 올라갔다. 토끼봉을 오르면서부터는 발목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릎도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끼봉은 숨이 가빠 두 세 번을 쉬며 올랐다(12시 도착). 그러고도 토끼봉 정상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10여분을 쉬었다. 너무 힘들어 의식이 혼미하다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10분을 쉬고 주위를 돌아보니 정신을 놓다시피 하고 쉬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정상 주변에는 쉴만한 나무그늘이 좀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여기저기에 눕다시피 쉬고 있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토끼봉의 가파른 경사 길을 내려서자니 발목이 시큰거렸다.
‘앞으로 적어도 서너 시간을 더 가야할 텐데 발목이 이래서 어떡하나. 에이 뭐 어떻게든 가기야 하겠지. 이제 힘든 구간은 하나(삼도봉)만 더 지나치면 되는 것 아냐?’
하지만 성삼재에 어떻게든 빨리 도착하여 서울로 가는 첫차를 타고 싶었다.

토끼봉 하산 길에 보이는 반야봉
토끼봉을 거의 다 내려올 무렵 서쪽으로 반야봉의 부드러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야봉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서 해발 1733미터, 고도로 치자면 설악산(1708미터)보다 더 높다. 노고단으로부터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으로부터는 약간 비켜서 있다. 반야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삼도봉 인근에서 갈라져 1시간 정도를 더 소비해야 한다. 오늘의 종주는 주능선을 하룻만에 주파하는 것이니 만큼 당연히 반야봉 등산은 제외하기로 했다. 반야봉에는 05년 1월 눈보라 속에서 올라가 본 것이 유일하다. 여름날의 반야봉 모습을 보고 싶다는 유혹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냉정하게 체념했다.
토끼봉에서 삼도봉에 오르는 구간은 종주길의 마지막 고행이었다. 끝없다 느껴지는 나무계단이 연속되었다. 나는 힘든 것을 달랠 겸 그 계단을 하나씩 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오르다보니 10개 단위로 숫자를 표기해 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나무계단의 숫자는 모두 600개, 이미 지쳐 있는 등산객들에게는 참으로 매정스레 여겨질 숫자이다. 삼도봉 정상에 오른 것은 12시 55분. 나는 완전하게 탈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삼도봉에 오르고 난 후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한동안 쉬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디선가 몹시도 구미를 당기는 냄새가 풍겨왔다.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염치불구하고, ‘국물이라도 남은 것이 있으면 좀 달라’ 란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삼도봉 오르는 길의 나무 계단

나무 계단의 숫자 표기
삼도봉을 내려와 노고단에 이르기까지도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몸이 지칠대로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걸령으로부터 돼지평전을 거쳐 노고단에 이르는 길은 그때까지 지나쳐 온 곳에 비하면 비교할 바 없이 순탄했다. 다만 약간 삐끗한 다리가 신경이 쓰였고, 그만큼 발을 내딛을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주변의 경관을 둘러보며 가볍게 주파할 수 있었다. 노고단의 돌탑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30분, 천왕봉(오전 5시 20분 출발)으로부터 계산하면 8시간 10분 만에 지리산 주능선을 완주한 것이다.
5. 후기
노고단으로부터 성삼재까지는 30분이 걸렸다. 혹시 서울로 가는 첫 번째 버스가 출발했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노고단을 넘어 내려올 때는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도 버스는 출발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도착한 다음에도 세 사람을 더 태우고 나서 출발했다. 나는 오늘 종주길에 나선 인원 90여명 가운데 대략 열 번 째 전후로 도착한 것이 된다.
서울 반포의 집에 도착한 것은 오후 9시. 그러니까 2일 9시 10분에 출발하여 24시간이 채 되기 전에 지리산 종주를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온 셈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리산 종주를 하룻만에 한다는 것은 웬만한 산꾼이라 해도 대부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통상 주능선을 두고 ‘백릿길’이라 했으며, 여기에다가 화엄사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길과 천왕봉으로부터 대원사에 이르는 길을 더하면, 이른바 정통 종주코스는 150리를 넘어설 것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실측이 이루어져 주능선은 길이가 25. 6킬로에 불과하다는 것이 알려졌고, 또 성삼재를 넘어가는 도로가 뚫리면서 거리에 대한 중압감이 사라졌다. 그 결과 현재는 주능선을 하루에 왕복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난 이번의 산행으로 하룻 동안에 주능선을 주파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화엄사에서 대원사에 이르는 이른바 정통종주를 하룻만에 해보나? 아니면 요즈음 산꾼들 사이에 훈장처럼 인식되고 있는 태극능선 종주(남원 인월면의 덕두봉 - 만복대 - 노고단 - 천왕봉 - 하봉 - 왕등재 - 산청의 웅석봉)에 나서볼까? 아니 내 나이 이제 50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허황한 꿈들을 접고 얌전히 살아야 되나 어쩌나?(2006년 6월 4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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