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세 번째로 읽었습니다.
<수호전>이나 <홍루몽> <돈황> 등 중국 역사와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의 하나일 겁니다.
맨 처음은 고등학교 시절에, 그리고 두 번째는 나이 40 전후한 시기에 읽은 바 있습니다.
처음 읽을 때부터 주인공 닥터 라빅의 성격이 몹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단히 지적이면서도 의협심이 강하고,
또 사람에 대해 차별하지 않으며 어떠한 사람들과도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춘, 내가 꿈꾸는 지식인상이라 여겼죠.
또 레마르크가 묘사하는 제2차 세계대전 전야 프랑스 파리의
혼란스러우면서도 세기말적인, 그리고 동시에 끈적끈적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인간 사회의 이런 다양한 측면을 따뜻하게 그려내는 레마르크의 솜씨가 감탄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 부러웠습니다.
'나도 이렇게 멋진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닥터 라빅과 조앙 마두라는 커플 조합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조앙 마두의 퇴폐적인 분위기와 백치미,
그리고 라빅의 한결같은 사랑에도 불구하고 주변 남자로 인해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라빅처럼 지성적인 남자가 어떻게 저런 천박한 여성을 사랑할 수 있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사랑은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하며 마음의 순정을 지켜야만 한다고 여겼습니다.
조앙 마두처럼 약간의 외풍만 있어도 마음을 지켜내지 못하고 흔들리는 여자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시절 제 눈에 비친 라빅과 조앙 마두의 사랑은,
얼굴만 예쁠 뿐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여인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이 찾아오는,
형식이 약간 달라진 신데렐라 이야기로 비쳤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서
이들 커플의 사랑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사랑은 마법과 같은 것이라서 예측 못할 구도로 불쑥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또 사람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조앙 마두의 허약한 멘탈리티를 감안하면 그녀의 흔들림까지도 사랑의 다른 형식일 수 있다 생각합니다.
작자인 레마르크 또한 조앙 마두의 라빅에 대한 사랑이 진실된 것이라고 판단하며 집필해 갔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사랑은 역시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이고 또 하염없이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며 그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조앙 마두가 사랑하는 라빅을 기다리다 못해 지쳐서 다른 사람과 동거하는 것은 결코 납득할 수 없습니다.
라빅은 그런 조앙 마두를 기다리며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사랑을 하는 남자로서도 라빅은 정말 멋지군요.
조앙 마두는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라빅에게 말합니다.
“이상해요. 사랑하고 있을 때 죽어야 하다니..... 날 사랑하시나요?”
이 질문에 라빅은 감동적인 말로 답을 해 나가죠.
“당신은 내 생명이었어.”
“당신은 날 살게 해 주었어. 난 하나의 돌맹이에 지나지 않았어. 그런 날 당신이 살려낸 거야.”
“조앙, 내 마음을 사랑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그것으로 부족해. 사랑은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해. 강물 속의 물 한 방울, 숲 속의 이파리 하나 같이......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은 그보다 훨씬 커.”
“당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어.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을 때도, 미워하고 있을 때도, 그리고 무관심하게 보였을 때도 말이야, 당신은 항상 내 마음 속에 있었어. 조앙.”
라빅의 사랑이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우리를 숙연하게 만드네요.
이 세상은 온갖 오욕과 악취로 뒤덮여 있지만
오직 하나, 사랑만은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하게 빛나는 가치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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